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MBC 비밀회동’을 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지난달 28일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높은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4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파기하고 청취와 녹음, 보도 행위 모두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 8월 1심에서 재판부는 대화를 ‘청취’한 점에는 유죄, ‘녹음’과 ‘보도’에는 무죄를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안승호)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 등 3인의 대화는 통비법 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한다”며 “이를 청취, 녹음, 보도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보다 이익이 크지 않으며 목적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수장학회와 MBC 지분 매각 논의가 국민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하는 것에 불과하며 진행에 상당한 절차와 시일이 필요해 국민 여론과 비판적 언론 보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대선까지 2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이익을 침해하는 공적 사안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언론보도의 공익성보다 사생활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재판부는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 등에 대화를 보도한다고 고시하지 않았고 이들이 동의하지도 않았다”며 “실명을 내지 않고 내용을 취사선택해 요약해도 충분히 알릴 수 있었다. 공적 인물이라도 사적인 대화까지 불법 감청·녹음으로 권리가 쉽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 기자가 핵심 취재원인 최 이사장과의 통화를 녹음한 연장선상에서 기자로서 내용 탐색을 위한 정당행위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본부장 목소리가 들렸을 때 통화 종료를 했어야 했다”며 “중단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통비법에 따라 대화를 청취·녹음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최 기자는 상고할 계획이다. 최 기자는 판결 직후 “국민과 언론이 생각하는 정의와 법적 정의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며 “상고와 별도로 저 나름의 방식으로 진실을 알리고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진영 변호사도 “사안의 필요성 및 긴급성 등 의미는 축소 해석하면서 언론의 자유보다 사생활만을 일방적으로 인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당행위에 대한 해석이 아쉽다. 부작위 행위에 대한 판결도 납득할 수 없고 법리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 단체들도 논평을 통해 최 기자의 ‘무죄’를 주장했다. 전국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항소심 판결은 결과적으로 언론의 책무인 ‘공익 보도’의 근거를 배제하고 과도한 형식적 논리를 적용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최 기자에게 잘못이 있다면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한 것밖에는 없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선 당시 정수장학회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정당행위로써 위법성 조각 측면을 법원이 너무 엄격하게 해석했다”며 “최필립 이사장 실수로 연결된 만큼 녹음과 보도 모두 유죄가 아니며 그것이 법의 정신인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언론의 공익성이 더 큰 만큼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며 “그 동기가 정당하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