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의 선거개입,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전교조의 법상 ‘노조 아님’ 통보 등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듯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법학자들은 어떤 관점을 갖고 있을까.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법과사회이론학회가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와 법적 대응’ 토론회를 열었다. 30여명의 참가자들은 최근의 상황에 대해 “헌법이 유린됐던 ‘유신체제로의 회귀’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할 제도”라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유를 부인할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라며 “나치의 독재를 경험한 독일에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립한 개념으로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방어적 민주주의는 독재자들이 독재를 위해 악용할 수도 있어 비상시에 가장 마지막으로 행사돼야 한다”며 “게다가 한국의 정당해산제도는 1958년 이승만정부가 진보당을 해산하고 조봉암 당수를 사법살인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정권이 마음대로 반대정당을 탄압할 수 없도록 도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통합진보당 해신심판청구 내용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법무부가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을 심판청구 이유 가운데 하나로 언급한 예를 들며 “차떼기를 했다고 정당을 해산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강령에 등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용어가 북한에서도 사용된다는 이유로 정당을 해산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조치가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6만명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해직교사 9명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노조 실체를 부정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고 이로 인해 공익이 침해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교조 법외노조화 조치는 전교조라는 ‘상징’을 의도적으로 논란에 끌어들여 정부 입장에 반대하면 ‘종북’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것”이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시도, 쌍용차해고,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 자살, 밀양송전탑 건설 등 현안을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박정희정부가 유신체제 도입 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던 일을 언급하며 “일상을 비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공안통치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정부가 북한체제의 동요, 동북아의 불안한 정세, 경기침체 장기화 등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종북몰이를 통해 위축된 표현의 자유와 자기검열 문제를 지적했다.
이날 토론을 지켜본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다양한 정당을 인정해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남북관계의 핵심정보를 국정원이 독점하게 해선 안 된다”며 “국정원이 기밀정보를 가지고 NLL 논란, 이석기의원 내란음모 기소 등을 주도해 정세를 조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박근혜정부의 공안탄압이 국가기관 선거개입에 대한 비난여론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들은 국정원 선거개입을 무마하기 위한 박근혜정부의 기획된 시도”라고 말했다.